누구 덕을 봤다는 표현을 간혹합니다.
나는 힘도 없었고 자격도 없었는데, 누가 힘을 써주어서 잘 풀렸을 때 쓰는 표현이지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려진 후에 남쪽의 유다왕 르호보암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 아들 아비얌 역시도 3년을 통치하면서 르호보암의 행한 죄를 그대로 행한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남유다는 하나남께서 손을 보셔서 징계를 주시든지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든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징계와 심판을 선포하셔도 뭐라 핑계 댈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삶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왕상15:3-4)
왕들이 악하고 온전하지 못한 정치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신 이유를
"다윗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고 그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후손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위하여, 예수 때문에 우리를 향해서 진노와 심판을 면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우리를 향해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우리는 살았고 정죄함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크고 놀라운 은혜가 또 있습니다.
이젠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가정과 자녀와 일터에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과 애굽땅에 복을 주신 것처럼,
다윗을 위하여 그 후손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견고하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의 통로이며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하여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기에,
나는 자부심과 긍지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 마땅한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