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협력해서 아람과의 전쟁터에 나가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남유다 여호사밧왕은 하나님께 한 번 물어보라고 요청합니다.
아합왕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선지자 4백명을 불러서 싸울지 말지를 물어봅니다.
4백명의 선지자들은 한 목소리로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왕상22:6)하면서
하나님께 받지도 않은 거짓된 말로 아합왕의 입맛에 맞는 예언을 늘어놓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이 사람들말고 또 다른 선지자가 있지 아니하느냐고 물어보면서,
아합왕은 한 선지자가 있기는 한데 흉한 일만 예언하기에 그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호사밧왕은 그 선지자를 요청하게 되고 아합왕은 신하를 불러서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러 간 신하는 그에게 왕에게 가서 길한 예언을 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그 당부를 들은 미가야 선지자는 그 신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14절)
그리고 아합왕 앞에 선 그는 4백명의 거짓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말하게 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뺨을 맞기도하고 결국 옥에 갇혀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는 상황이 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아무리 듣는 사람에게 쓰고 아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서 환난과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해야 하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4백명의 어용 선지자들처럼 귀에 듣기에 좋은 말만 해서는 안되며, 자기 생각이나 욕심을 담아서 말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위하여"(11절) 예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이익과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자기를 위하여가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하여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간신배나 아첨꾼이 아니라 충성스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좋은 것들 때문에 몰려드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말해주고 충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의 말을 충언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를 위하여 말해주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내 혹은 남편, 부모, 형제, 순장, 목사 ...
나를 위하여 진심을 말해주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자존심 상하다고, 당신이 뭘 아느냐고 하면서 아내나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잔소리만 한다면서, 나를 위하여 해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현실을 잘 모르신다고 하면서 그 말씀을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해주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를 위하여 하는 말인지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