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고 동행하며 떠나지 아니하였던 히스기야는 형통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을 통해서, 형통이란 것이 그저 잘 먹고 잘 살면서 아무 걱정과 근심도 없이 사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형통한 그의 인생 앞에도 앗수르의 침략과 개인적인 질병이 있었음을 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형통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는 것이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형통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침략에 따른 국가적인 위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극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들어서 죽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간절히 기도하며 눈물로 통곡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2-3)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병이 낫게 된 것으로 인하여서 기쁨을 넘어서서 그만 교만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문안하러 온 사신에게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기름, 그리고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신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생명, 재물, 금은, 향품 등이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얻은 것인냥 교만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징계하면서 왕궁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며,
왕의 후손 중에서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바벨론의 침략과 포로됨을 선포하십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잘 나서, 잘 해서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셨고, 복되고 잘 되게 세우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 아님을요.
히스기야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왕하20:6)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므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서 존귀하고 보배로운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나의 구원과 복된 인생은, 내가 잘 나서도 아니고, 내가 잘 해서도 아니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도 아님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쭐대거나 거들먹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도 안되며 그렇게 할 자격조차도 없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낮아지고 여전히 겸비해야 합니다.
예수를 위하므로 나를 나 되게 하셨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