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장 31절)
어느 시골농부가 우연히 독수리 새끼를 잡게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닭장 속에 넣었다고합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을 독수리 새끼는 닭들과 함께 자랐고, 모든 것이 닭들의 생활방식과 똑같아졌습니다.
어느 날 동물보호운동가가 지나다가 그 독수리를 보고 농장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독수리가 닭들과 함께 있군요." 그러자 농장주인은, "이제 더 이상 날지를 못하는 독수리입니다. 닭과 다름이 없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 여긴 동물보호운동가는 품값을 주고 독수리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독수리를 데리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그는 독수리에게 힘차게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독수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독수리가 드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그 독수리는 그의 손을 벗어나 곧 힘차게 날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만남'의 소중함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진로와 영역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만남의 축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멘토와 만나야 합니다.
우리광염교회가 그런 축복된 만남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들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멘토가 되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안에서 자유함을 얻고 행복한 성도들, 그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런 좋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는 그 만남을 통하여 '도전과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농부와 만난 독수리는 닭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닭들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전혀 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능력도 잠재력도 깨닫지 못했고,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물보호가를 만난 독수리는 자신과 똑같은 독수리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힘차게 날개짓하며 솟구쳐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닭장속에 갇혀지낸 날지 못하는 독수리와 같은 존재였는지 모릅니다.
구원자의 손에 의해 자유함을 얻은 독수리처럼, 세상을 향해 힘껏 날개짓하는 우리광염교회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도전은 있는데 비전이 없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반대로 비전은 있는데 도전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전과 도전은 동시에 이뤄져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근시안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가기에 우리는 곧 인생에 대하여 식상하게 되고 회의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비전이 있고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설령 눈앞에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담대히 감당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커다란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비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지혜의 눈을 갖게 합니다. 비전은 우리 자신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닭들과 어울려 있는 안일한 독수리가 아니라, 정상을 향하여 힘차게 치솟는 독수리로 변화, 성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현실의 고난에 무릎을 꿇고 체념하고 안주하지만, 비전을 바라보는 사람은 더욱 강한 동기를 갖게 됩니다.
우리광염교회를 통하여 만난 소중한 지체들이
도전에 대한 희열, 비전에 대한 꿈을 가진 멋있는 인생을 누리고,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광염교회에 대한 소망 하나] 도전과 비전을 향해 힘껏 비상하는 교회
선한 청지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