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by 이도수 posted Nov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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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대접을 잘 받지 못하거나 소홀히 여김을 당하면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상처받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속이 상하고 그 사람이 미워집니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이 잘못 된 것인가요? 화가 나는 것, 서운해지는 것,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잘못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런 감정이 없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다스리느냐가 관건입니다. 성경에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누르고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함, 서운함, 분노를 잘 해결할 때에 우리가 성숙하게 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고 하는 초대 교회에서도 소외되고 상처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과부에게는 구제를 했는데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구제하지 않고 빠뜨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이 빠지게 되면서 헬라파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 당시 교회의 중심이 되고 있는 히브리파 성도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자신들은 토박이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헬라파 성도들의 원망이 열 두 사도에게도 들려집니다.

 

열 두 사도는 직접 구제하는 일을 챙기던 것을 집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게 합니다. 열 두 사도는 마음껏 말씀과 기도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구제 사역의 역할은 일곱 집사가 하게 됩니다. 열 두 사도를 돕고 공동체를 도와서 좀 더 규모 있고 조직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바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요? 일곱 집사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6:3)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일은 교회에서 누군가 맡아서 반드시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균형 잡히게 구제하고 분배할 수 있습니다. 효율성과 공평성과 배려와 진심으로 하게 됩니다. 적절한 말과 언어로 구제 대상자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5:13)

 

교회만이 아니라 가정과 기업체와 공공기관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공동체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게 합니다. 기업체 사장님, 회장님이나 한 나아의 장관,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거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라면, 안 믿는 그들에게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은 진정한 자기초월을 향하는 본질적 인간의 역동성을 통합하려는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 초월적인 고결한 삶이 영성입니다. 영성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 인간으로서의 겸손과 양심, 도덕과 정의와 정직함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한 고위 공직자가 국회의원이 질의하는데 본인 발언 시간도 아닌데 질의하는 태도와 내용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삿대질을 하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당한 정당에서는 그 공직자를 향해서 사퇴하라는 압박을 했습니다. 그때 그 공직자의 윗사람이 어떤 자리를 빌어서 사과를 했습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공직에 몸 담은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회 파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한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에 공직자들이 와서 임하다보면 답답하고 화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절제했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사과를 했습니다. 야당 측에서도 감동스러운 사과라는 표현을 하면서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고 존경의 말을 했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포장된 발언이거나 어쩔 수 없이 사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양심적이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말과 언행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영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은 선한 동기, 도덕, 정의, 정직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성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깊은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은 그것을 초월하고 넘어섭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오해, 무시, 모욕, 손해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에서 나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1:14)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3:16)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더 나쁘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저런 말과 행동을 한다고 욕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소인배와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버리게 됩니다. 돈과 인기와 물질과 사심과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에 좌지우지 당하는 사람은 소인배입니다. 우리는 소인배가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와 생각과 가치관과 사상에 지배당하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예수가 있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일곱 집사를 뽑을 때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였습니다. 자기 욕심, 사리사욕, 이기심, 정욕, 자기 감정에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일 잘 하는 것, 뛰어난 것, 재력과 학식이 있는 것도 보아야 하지만 우선 보아야 하는 것은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특히나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란 성령에 이끌리는, 성령에 순종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의 가장 기본이 무엇일까요? 성령 충만한 최고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