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기 목숨을 부지했던 인간적으로도 부족하고 치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가 정신 차리고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주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사랑하는 아내도 자기 목숨하고 바꿀 수도 있었던 연약한 사람이 아브람입니다.
바로는 사래만 돌려준 것이 아니라,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아브람에게 주면서 후대했습니다.
자신을 속이고 큰 재앙을 당하게 했었던 아브람에게 바로는 오히려 재물을 주어서 보냅니다.
즉, 아브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했었던 부도덕한 자에게 오히려 재물이 임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아브라함에게는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였으니까요(창13:2).
우리에게도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대가족으로 함께 지내기에는 육축들이 많아서 아브람은 조카 롯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고 통 크게 제안을 합니다.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쪽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롯이 눈을 들어 ... 바라본즉 ... 물이 넉넉하니 ...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13:10-~13)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선택할 때에 예쁘고, 늘신한 것만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여자들도 남자를 선택할 때에 잘 생기고, 돈 많고,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것만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선택하고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없는 것이 대단해 보이고,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커 보인다 할지라도,
내게 지금 있는 남편 혹은 아내, 부모, 형제, 직장, 일터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어도,
롯에게 어떤 땅이라도 먼저 선택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나 가나안땅을 약속의 땅으로 여기고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아브람은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3~4)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13:18)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 하지만,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언약을 확인하고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힘을 얻고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최고의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배자입니까?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