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by 이도수 posted Dec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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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아이에게 복된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여전히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것이 즐겁고 노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 집 12살 먹은 딸이 딱 그 수준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게 필요한 것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당장 눈앞에서 즐거운 것을 찾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수준이 같을 수 없으니 딱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어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혼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겁박을 주면서 억지로 하게 합니다. 이것이 고통이며 아이에게는 핍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핍박이 그를 깨닫고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를 만난 이후에 180도 인생이 바뀌면서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울은 유대인과의 변론에서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말합니다. 그로 인해서 사울은 위험해집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믿음의 형제들에 의해서 사울은 고향 다소로 피신 보내집니다. 사울이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에서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도 함께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이지 않을까요? 모이기가 어려워지면서 교회도 쇠퇴하고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9:31)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갑니다. 예수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교회의 수가 더 많아집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교회는 온갖 핍박과 위협을 받았지만 더욱 강하고 든든하게 됩니다. 즉 세상의 반대나 박해가 복음 전파와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 시대에 기독교 박해가 심했습니다. 네로황제를 비롯해서 많은 로마 황제들이 박해했습니다. AD64년 로마가 큰 화제로 불탔을 때에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잡아 죽일 정도였습니다. 로마 시대 당시 기독교인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2백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AD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AD392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됩니다.


조선 시대의 기독교 박해를 보면 1791년 이후 1백 년 동안 1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신사참배로 인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핍박을 통해서 기독교는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의 신앙은 박해와 어려움이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시대의 교회는 점점 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과 권력이 교회에 집중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지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부패로 인해서 고스란히 백성들이 고통과 아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항해서 거룩한 저항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1517년 종교개혁을 통해서 교회의 권위주의와 잘못된 신념은 거부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핍박이 있든지 없든지 사명을 감당해야 건강하고 든든하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면 안 됩니다. 세속적인 사상과 이론과 방법과 문화와 원칙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교회는 날마다 갱신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갱신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그리스도인은 멈추지 않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계속 자라야 하며, 새로워져야 하며, 성장해야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핍박이 있든지 없든지 각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새로워 질 때에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숙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려움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