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우리

by 이도수 posted Apr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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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유초등부는 주일오전 설교를 정창복 목사님이 교안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교안을 보니까 서론에서 시소 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즐겁게 타고 있는 시소를 볼 수 있습니다. 시소는 혼자서는 탈 수 없는 놀이기구입니다. 두 명은 있어야 한 쪽씩 앉아서 시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시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숭배,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 채 먹는 것을 금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이런 결정이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유대주의자들이 유대에서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면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을 상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바른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변론합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안디옥 교회는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판단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많은 변론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 중의 믿는 자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는데 지금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을 향한 표적과 기사를 진술했습니다. 결국은 야고보가 지혜로운 중재안을 냅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숭배,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게’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야고보의 제안을 예루살렘 교회가 좋게 여기고 그대로 결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최종적인 결정은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야고보의 의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도들과 장로들과 지도자들의 논의, 소통, 변론, 의견 개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하고 덕이 되는 제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압축해서 “성령과 우리는 알았노니”(행15:2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만의 독자적인 결정, 결의, 판결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갔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령과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과 우리가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여러 회의들이 있었습니다. 이단의 잘못된 교리에 맞서며 AD325 니케아회의에서 기독교 교리를 정리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질이며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 ‘삼위일체’ ‘부활절 날짜를 춘분 후 만월 지난 후 주일로 제정’과 같은 교회와 절기가 결정되었습니다. AD397 카르타고 회의에서는 문서의 사도적 권위와 감화력을 기준으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결정하신 것이라고 우리는 받아들이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일을 결정할 때, 진학이나 취업이나 결혼을 결정할 때, 퇴직과 사업을 결정할 때, 학급이나 동아리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떤 일들을 결정할 때에 대화와 소통을 해나갑니다. 사람들은 대화와 소통과 협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도 가장 건전하고 민주적인 절차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든 것들을 다툼과 소통과 대화를 통해서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인간에게는 탐욕과 죄성이 있기에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엄마, 아빠, 사장님, 목사, 주부, 학생이든 상식과 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할 때에는 지역과 정보를 조사하고 검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적, 외적인 증거들을 확인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인지에 대한 내적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증거로는 자금, 본인의 장단점, 기질, 전공, 관심, 은사, 가족의 동의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증거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성령의 열매에는 기쁨(희락)과 평안(화평)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에도 역시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행15:30~31)

 

기도 없이 자신의 생각으로만 하는 것도 안 되지만, 기도만 하면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도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에서 하나님과 늘 함께하며 동행하는 습관과 훈련이 정말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혼자 알아서 다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대로 다 알아서 해서도 안 됩니다.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성령과 우리가 함께 인생의 시소를 탄다면 가장 균형 잡히고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