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배자입니다(4)

by 이도수 posted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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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쟁사회 속에서 우리는 노력하고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항복하지 말라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항복’이나 ‘복종’은 익숙하지 않으며, 싫어하며, 인기 없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항복은 패배, 못난 것, 어쩔 수 없는 양보 등 좋지 않은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금메달은 영광스럽지만 은메달은 슬프게 받아들입니다. 1등은 기억되지만 2등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히 항복해야 할 하나님에게도 항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듯합니다. 미국의 존 비비어 목사가 쓴 책 「영적 무기력 깨기」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식축구 카우보이스 팀의 광팬이라고 합니다. 그는 플레이오프 진출 결정전을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TV 앞에 선채로 한 눈 팔 새도 없이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주님, 8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기도할께요”라고 반응했습니다. 성령은 계속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 이 경기만 끝나면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할께요. 이제 겨우 6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성령은 계속 기도하라 했습니다. “주님, 이 경기만 끝나면 종일 기도할께요, 원하신다면 밤이라도 샐께요” 그는 경기를 다 보고 곧장 사무실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이상하게도 기도하라는 촉구하심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기도를 짜내도 무미건조한 말 뿐이었습니다. 그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주님, 남들이 하나님과 댈러스 카우 보이스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물으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주님보다 미식 축구를 택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 때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더랍니다. “아들아, 나는 다섯 시간 기도의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순종이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깨지 않고 우리를 설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께 삶을 드릴 때 우리는 구속이 아닌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핵심은 항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투항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예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릴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 자아를 죽이는 것,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단념하는 것, 숙명론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는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희생하는 것, 또는 변화되어야 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삶을 드리고, 항복한다는 것은 우리의 성격을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독특한 성품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하나님께 항복할 때 오히려 승리합니다.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면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에 항복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로 위대한지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했는지로 결정 된다”고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는다면 두려움, 자만심, 욕망, 자아에 항복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기대, 돈, 분노에 항복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항복합니다. 우리는 항복할 대상을 선택할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과들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은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이며 유일한 삶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자극이 아닌 이성적이며 지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고 현명한 행동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