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by 이도수 posted Sep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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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수리아의 두로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바울이 큰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바울 은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를 만납니다. 그는 바울의 띠로 자기 손과 발을 묶으면서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 임자를 이렇게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예언합니다. 가이사랴 성도들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권하는 말을 듣지 않고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에 간 것일까요? 고집스럽게도 자기 열심으로 밀고 나간 것일까요? 아니면 바울에게는 다른 성령의 감동이 있었던 것인가요? 사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있게 될 고난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행20:23~25) 바울은 알고 있었으며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누구의 뜻인가요?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당할 고난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인간적인 요청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가라’ ‘가지 말라’의 기준이 그들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하신 말씀들이 떠오릅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 하리라' '인자가 회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될 것이라”는 말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말렸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는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막아서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우리는 우리 뜻대로, 편의대로, 유리한 쪽으로 하려고 합니다. 기준이 자기 자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좋은 것을 베풀어주는 존재로만 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요구를 다 해결하시고 들어주셔야만 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바울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서 있게 될 환난과 결박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선하신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때서야 바울을 붙잡으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던 형제들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행21:14) 하게 됩니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하는 ‘난 몰라,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 뜻에 맡겨야지’ 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책임과 의무까지 돌려버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말은 ‘될 대로 되라, 신의 뜻대로’ 라는 의미인 ‘케세라 세라’ ‘인샬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어’라는 유약한 체념이나 책임 회피의 말이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신뢰이며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가 생각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 대답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필요를 간구하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간청한 후에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어떠하든지 순종하겠나이다’ ‘모든 일에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소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며 왕이신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생명을 살리는 것, 영혼이 잘 되는 것,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고 확장되는 것일 겁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처럼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아프고, 괴롭고, 손해보고, 인간적으로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참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