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소망, 부활

by 이도수 posted Sep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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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23:6)고 말합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2~4)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이 바울이 예수님께 받은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크게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은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의 자격이 됩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어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아빠인 내가 딸 하주를 위해서 죽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위로 범하는 죄만이 아니라 미움, 시기, 질투, 교만 같은 마음으로 범하는 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모른다하고 대적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사람은 영원히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당장 죽이지 않으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죽여 제사함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임시적으로 허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동물 대신에, 아니 사실은 사람 대신에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동물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장사 지낸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부활을 비유하자면, 씨가 죽은 것 같지만 각각의 형체를 가지고 다양한 과실의 형체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러 증인들이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베드로, 열두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까지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이런 증거와 증인들이 있어도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4:18) 사람들이 총명이 어둡고 무지하며,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믿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전파와 믿음은 헛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는 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복종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매질, 체포, 모욕, 위협을 당하면서 과연 살아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하시며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부활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가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죄, 실패, 고통, 시험, 환난, 아픔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능력도 없지만 부활을 믿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두렵게도 하지만, 죽음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통과한 후에 큰 믿음이 됩니다. 긍정적인,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의지, 자기 최면적인 긍정적인 사고방식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신다는 믿음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고 옥한흠 목사님의 <돌을 옮겨라>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되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부활하는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며 역사하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마음의 돌을 옮겨 놓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에 앞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그 돌을 옮겨주지 않으셨다. 나사로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죽는 우리를 날마다 살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라는 글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돌이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 불신, 무지, 두려움입니까? 미움, 욕심, 원망, 이기심, 자존심, 패배의식입니까? 혹시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믿는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그 돌이 가로막고 있으면 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생명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가로 막고 있는 그 돌을 빨리 옮겨놓아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 안에 날마다 생명이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