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기다린 이방 여인 룻

by 이도수 posted Dec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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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 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외로움과 차별, 때로는 고된 노동과 학대,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이주민들의 고충을 우리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사시대 유대땅 베들레헴에 가장인 엘리멜렉과 부인 나오미와 두 어린 아들 말론과 기룐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유대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게 됩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엘리멜렉 가족은 급기야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오늘날 이민 생활도 녹록치 않은데 3천 년 전 고대에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을 하던 중에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찍 결혼한 두 아들이 자식도 남기지 않고 죽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고향 사람들의 만류와 비난을 뿌리치고 모압까지 왔을텐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차라리 고향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었을 텐데, 나오미는 홀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더 이상 모압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이 땅에서 살아갈 소망도 없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그런데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좋은 소식이 들립니다.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꿈을 갖고 왔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아직 젊으니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합니다. 첫째 며느리는 울면서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 이 얼마나 놀랍고 단호한 고백이며 결단입니까!

 

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조차도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나이 많아 늙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건만,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로 굳이 비유하자면 모태신앙이라 할 수 있는 야곱조차도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룻은 어렵고, 곤고하고, 막막하고, 원망 불평해도 마땅한 때에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많은 기적을 보며, 가르침을 듣고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적을 본 체험이 있다고 해도 그 고백은 어렵습니다. 그 고백을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룻의 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룻은 모압의 신 그모스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택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자신의 민족과 민족의 신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나온 것은 절대적인 터전과 기득권과 안정을 버려두고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버려두고 떠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즉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나요? 진학, 취업, 결혼, 일, 사업을 하며 선택할 때에 그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CBS TV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 고등학생이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선생님이 칠판에 지금 공부 못하면 대학에서 미팅은커녕 공장가서 미싱 해야 한다. 너의 대학이 너의 연봉과 마누라의 얼굴을 결정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맞서서 우리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도록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성공해도 하나님을 찾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실패해도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받아도 하나님을 다 찾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서 한 명만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치료받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 받지 못했지만 더욱 복음을 힘 있게 전하게 됩니다. 불합격, 실직, 실패, 질병도 하나님을 더 구하고 찾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잘 되어야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안 되는 경우에 하나님을 간절히 간구하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셔야, 마음을 주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안 하겠다고 도망친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룻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받으러 온 룻을 하나님은 보호해주시며 상을 주십니다.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됩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것이지요. 룻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데 쓰임 받는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말합니다. ‘헤세드’라는 개념은 체결된 언약이나 계약을 마음을 다해 이행하는 사랑이며, 감정과 의도를 포함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향은 실천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자비이며,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 이상의 선처를 자발적으로 베푸는 사랑입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보아스도 룻에게 베푼 사랑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헤세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셔서 헤세드의 사랑을 완벽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죄로 죽어야 마땅한 우리를 예수를 믿게 하셔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이라고 하십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나누었습니다. 동두천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 1,600장을 나누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가난하고 어려운 현지인들을 위해서 생명의 쌀을 보내고, 어려운 가정을 돕습니다. 평상시에는 SOS헌금으로 어려운 성도를 도우며, 절기헌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과 선교에 집행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덮고, 세상을 덮기를 소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