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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죄를 안 짓고 살 수 없을까요? 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죄를 짓는 문제와 대면하게 됩니다. 간혹 수련회나 기도원에 다녀와서 생기는 경건함은 며칠이 지나면 금 새 사라져버리곤 하지 않나요? 미움, 시기, 질투, 교만, 욕심, 정욕 없이 살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바울이라고 죄에 대하여 초연하기만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죄에 대해서 처절한 싸움을 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복음 전파자이며 성경을 무려 13권을 쓴 인물인데 말입니다. 그럼 죄에 대한 문제는 인류 공통의 문제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8~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예수를 믿었으면 죄를 완벽하게 이길 수 있으며 죄와는 상관없이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맞지 않나요? 그런데 왜 예수를 믿는 우리는 죄를 여전히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바울의 죄와의 싸움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7장에는 죄와 싸우지만 복종하지는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될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는 것 자체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이 제 기능을 하게 되면서 죄에 대해서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죄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이 세상에서 죄의 본성을 가진 옛사람과 선을 행하려는 새사람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은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1)고 말합니다. 죄를 행하게 하는 것은 율법도 아니고, 새사람이 된 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의 본성, 즉 ‘육신’, ‘내 속에 거하는 죄’ 그리고 ‘옛사람’이 죄를 범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죄 값을 누가 치러야 하는 것일까요? 그 죄 값을 누가 담당해야 하냐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해주시고 책임 지어 주셨습니다. 납득이 되며 이해가 되시나요? 그런데 이미 그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우리는 정죄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죄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정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죄의 본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정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죄에게 종노릇하다가 정죄 받아서 사망으로 끝내는 인생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습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보다 크고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정죄함은 우리에게 더 이상 없습니다. 믿어지시나요?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있도록 성령께서 늘 도와주실 겁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