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목사이고 싶습니다

by 이도수 posted Jul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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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주전에 아프리카 말라위라는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인프라도, 자원도, 기술도, 재원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가난과 기근으로 죽어 가는 땅이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50년 정도 되었는데,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아직도 선진국의 원조로 먹고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 땅을 바라보면서 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찾아왔을 때에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먹하고 답답한 마음뿐 이었습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아무 것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키웠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당신들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들은 기를 쓰고 공부를 시켰습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람이 길러지고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우리나라 모 대기업체의 CEO도 “사람이 그 어떤 기술보다 우선해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카피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떤 것보다도 사람이 소중한 가치이며 사람을 잘 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에게는 함께 하면서 돕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그레데라는 섬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후에, 디도라는 제자를 남겨 놓고 옵니다. 바울이 디도를 섬에 남겨 놓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디도를 통해서 사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건물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라고 할 수 있는 장로와 감독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람을 세울 때에 아무나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할 정도의 엄격한 기준으로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인생을 얼마나 살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기준은 이렇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했습니다.(디도서1:6-9)

  사람을 세우는데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둔 이유를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1:9). 즉, 가르치고 책망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도자는 말이 서야 합니다.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가르치고 세울 수 있으며, 그 가르침에 권위가 있게 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쟁이들보다는 본이 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가, 교사, 목사, 지식인들은 많습니다. 그들은 말이 앞서는 것보다, 그 무엇보다 삶이 앞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신 그리스도인이며 목사 된 나도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소원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본이 되는 목사이게 하옵소서‘

‘말보다는 삶으로 설교하는 목사이게 하옵소서.'

 

나는 이런 목사이고 싶습니다.

착한 목사,

지혜로운 목사,

균형잡힌 목사,

신령한 목사,

행복한 목사

그리고 삶으로 본이 되는 목사이고 싶습니다.

 

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