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입니다

by 이도수 posted Oct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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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으로 귀화를 했다면 그는 대한민국을 알아야 합니다. 언어, 역사, 문화, 관계, 일반적인 상식들을 알면 우리나라에게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를 잘 모른다면 일상생활이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를 바로 이해하고 알아야 우리의 일상생활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관은 우리 일상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생활이고, 생활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교회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요? 건물, 예배드리는 장소, 조직이라고 생각했나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1:2)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며,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교회는 건물도 장소도 조직도 아니라 사람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거룩하게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며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며 우리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영어로는 Saint이며 헬라어로는 ‘하기오스’라고 하며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성도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거룩한 자라고 불리기 부끄럽고 죄송해요, 매일 매일 죄 짓고 착하지도 못한데요.’ 예수를 믿지만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졌다는 것이죠. 바울이 고린도 지역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에게 성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착해서 그렇게 불렀을까요? 고린도 지역 성도들을 살펴보아야 ‘성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지역의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그 당시에 고린도는 적어도 5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던 로마시대의 항구로 대도시였습니다. 무역, 해상 교통이 발달하다보니 수많은 상인들, 노예들, 여행객들, 돈, 시장이 몰렸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행객이나 나그네들이 많은 역전과 항구에 여관들이 많고 환락가나 사창가 발달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에는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을 포함해서 열 두 개 이상의 큰 우상 신전이 있을 정도로 우상 숭배 넘쳤습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여사제들이 종교적인 제사라는 명분으로 음란한 성행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여사제들이 고린도 시내에 내려와서 사창가의 여인이 되어서 매춘을 행했다고 합니다. 고린도는 근친상간과 동성애도 만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음란하고 음행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말할 때 ‘고린도인 같다’를 관용적으로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음란과 우상숭배를 일삼던 고린도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도 거룩하여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룩하여 진 것인가요? 그들이 선한 행위와 착한 행동을 했기에 거룩하게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인만이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찌들었나요? 우리도 얼마나 더럽고, 악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기만적이고, 음란하고, 쾌락을 추구하고, 모순적이었나요? 로마서 말씀처럼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즉 성도의 신분은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은 착하게 살게 되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때로는 우리 자신을 보면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거룩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거룩하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경우들이 꽤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예수를 믿은 후에는 완전히 변했을까요, 얼마나 괜찮아졌을까요? 놀라운 것은, 예수를 믿기 전에 행했던 그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꽤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분쟁, 소송, 성적 부도덕, 혼인 문제, 방종, 무질서, 은사 문제, 우상숭배, 근친상간, 교리적 문제들이 그 당시의 다른 교회들보다 유난히 많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그 상처, 연약함, 미숙한 성품이 다른 사람과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5: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1) 구원받아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 받은 이후에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죄를 믿은 후에도 범하고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손을 씻고 그곳에서 나오면 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셨습니다. 행위, 선행, 착함, 공로가 많아서 구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하셔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구원을 받았으니 죄의식 없이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맘 편히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예수를 주로 고백한 당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멋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