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허물을 덮어주며 살아갑니다

by 이도수 posted Jun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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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허물이 있습니다. 허물이 있다는 말은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죄와 허물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이 형벌을 대신 받으시며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하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자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씩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심판주이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무조건 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회개의 기회와 용서를 베푸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누군가의 허물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허물을 덮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들추고 고발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그런데 어떤 이는 죄가 아닌 것을 스스로 허물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한다면 죄인가요? 아버지 없이 자란 것이 죄인가요? 이런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의 죄가 비밀인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회개하고 용서 받았으면 이것은 허물도 아니지만 본인이 허물이라고 생각하며 감추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추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잠11:13) 하나님은 감추고 싶은 것을 숨기며 지켜주라고 하십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어 너부러진 모습을 함이 보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 때문에 노아는 함의 자손을 저주합니다. 함이 없는 얘기를 하고 거짓말을 했나요?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지만,  부모의 허물을 덮어드려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는 부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비판하게 되면 허물이 있는 그 사람의 권위나 자격을 인정하기 어려워집니다. 구스 여자를 취한 모세를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합니다. 물론 그들은 허물을 허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12:2)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의 권위를 부인합니다. 지도자의 허물을 비방하면 그 다음은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도 은연중에 ‘허물이 있는 사람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모, 상사, 지도자, 남편 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제시하는 근거 역시 그 권위자의 허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만약 지도자가 허물이 있다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지도자는 없을 것입니다. 지도자에게서 허물이 보이면 덮어주어야 합니다. 허물을 덮어주어야 그는 계속해서 ‘나의 스승, 남편, 지도자’로 남습니다. 그러면 지도자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서 누구도 인정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허물이 드러날 때 따라오는 것은 실망감입니다. 허물을 보고 사람에 대해 실망하면  안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그를 멀리해서 관계가 끊어지면 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 곁에 남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은 허물 있는 모습을 용납하고 기도해주라고 하십니다. 그럼 그 사람이 엉망이 될까요? 어떤 이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비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똑같은 부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명령을 하실까요? 하나님은 공권력과 정부 기관들을 통해서 다스립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미흡한듯해도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용납하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서 비판할만한 허물이 눈에 보입니다. 우리가 비판할 능력이 없어서 비판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로 비판 대신 용납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사람의 허물과 부족함을 보고도 사람을 존경할 수 있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용납하고 기도할 때 사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