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실한 종으로 살아갑니다.

by 이도수 posted Aug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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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안창호 선생님이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이 아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미국이 세계적인 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초등교육부터 알고 싶다고 해서 그러셨답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도 이권 때문에 상투를 잡고 서로 싸우고 어리석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큰 웃음꺼리가 되었죠. 안창호 선생님은 자기가 거하고 있는 건물 주변을 빗자루를 들고 아침마다 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무 말도 없이 매일 빗자루 질을 했다고 하죠. 그렇게 한 동안 하니 한국 사람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동네가 깨끗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미국인이 그곳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한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당신 나라에서 지도자가 왔습니까?’ 한국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아니요, 글쎄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에게 신뢰를 얻게 되어서 안창호 선생님이 있던 건물이 한국의 영사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이곳에서 영사 업무를 했고, 이승만 박사나 민족 지도자들이 미국에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창호 선생님의 빗자루 질이 이런 대단한 결과를 갖고 온 것입니다.

 

그와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절하며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하며 권세 있는 자리를 갖게 해달라고 청탁합니다. 그 말에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은 잔뜩 화가 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하시며 진정한 종의 모습을 가르쳐주십니다.

 

진실한 종은 어떤 모습일까요? 첫째,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자신을 내어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대함을 권력, 돈, 명예, 인기를 얼마나 소유했느냐로 정의합니다. 두 제자의 어머니도 예수님의 좌우편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예수님은 진정한 영광스러움을 신분이 아닌 섬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기회 있는 대로 놓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진실한 종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생각하며 잘 살핍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빌2:4) 자신의 필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인식합니다.

 

둘째, 청지기처럼 충성합니다. 청지기에게는 주인이 있으며, 맡겨진 일이 있으며, 계수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진실한 종으로서 청지기는 핑계를 대거나, 뒤로 미루거나, 상황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다리지만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만, 순장만, 할 만한 사람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청지기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 합니다. 일의 규모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꼭 내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거나 ‘이렇게 하찮은 일을 하기에 난 너무나 아까워’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 후에 순장님들, 부서장들과 성도들이 자원해서 예배당 청소와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일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되죠. 별로 위대하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일을 행할 때에 위대한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실성을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셋째, 낮은 자세로 겸손 합니다. 진실한 종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외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돕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일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유명 인사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불빛이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목 받는 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긴 종들을 하나님은 천국에서 큰 자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이며 영성가인 Henri Nouwen(헨리 나우웬)은 마지막 생애 수 년 동안 장애인 섬기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우리 교회 9주년 설립감사예배 강사로 왔던 김삼동 목사님(우리소망교회)은 소년원 사역, 노인사역, 호스피스 사역, 다문화사역, 음악 재능기부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진정한 종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지 의무감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것을 알지만 섬기는 그 자체가 행복합니다. 티벳의 승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섬기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넷째, 예수님 안에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둡니다. 진실한 종은 조건 없이 사랑받고, 은혜로 용납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섬긴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아셨기 때문에 낮아짐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구원자, 하나님이시지만 아무리 낮아져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이 되려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확실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만이 자유롭게 섬길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걱정하죠.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가식이나 외식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불안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섬겨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진실한 종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과 상장에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8)

 

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종은 충성스런 청지기처럼 낮은 자세로 자기 자신을 내어줍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둘 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