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자로의 부르심

by 이도수 posted Sep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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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운동을 잘 하는 선수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분야의 세계적인 감독이 당신을 제자로 부릅니다. 기술을 가르쳐주고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주겠다는 제안을 해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치료하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할 제자들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고 그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게 하며, 더 확장시키시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에 그들은 즉시 순종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4:18~20) 이 본문만 보면 예수님이 부르셔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즉시 따른 것 같습니다. 정말 그들은 즉시 따랐을까요? 예수님이 권력자나 세계적인 감독이나 유명인도 아닌데 그들이 즉시 제자가 되겠다고 응답했을까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자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까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 듣고 있었을까요? 예상하건데 베드로가 귀를 막지 않고 있었다면 분명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축사와 치유 사역을 들었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도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갈릴리 지역에서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더 이상 그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곳을 볼까요.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1)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를 주목하고 계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를 이미 부르고 계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주도적으로 사람을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베드로는 결국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전적인 선택이요 은혜요 주권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과 죄인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물고기를 기적적으로 잡게 해주시니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알게 된 것인가요? 평생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잡은 적이 없기에 이 분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인가요? 베드로는 무서웠습니다. 신적인 권세와 능력 앞에서 두렵고 경외스러웠습니다. 그분이 하신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습니다. 베드로와는 그 상황과 분위기와 농도가 다르다할지라도, 우리도 그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당해야 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죄의 열매로 허무와 고통과 슬픔으로 영원히 멸망당해도 마땅하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나를 예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감격하게 됩니다. 구원으로 부르심은 예수님의 전적인 선택입니다. 내가 원하고 고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예수님의 부르심은 구원의 부르심과 동시에 주인 됨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인 됨이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그대가 그 인물이 되라. 왜 그대는 인물이 되려고 하지 않는가?’ 반응이 없는 자들은 무리로 머물지만, 부르심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제자가 됩니다.

 

순종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제자가 되는 것은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며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꿈을 따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어디입니까? 학생은 공부하고 배우는 학교이며, 직장인인 회사이며, 가정주부는 가정이며, 자영업자는 사업장 입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부르시는 장소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