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by 이도수 posted Mar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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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죠. 만약 당신에게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특효약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 약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더군다나 그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죽어가는 그 사람이 그 약을 모른다면, 안 믿는다면,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경멸하고 고발한다면? 특효약을 가진 사람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요? 억울한데, 기분 나쁜데,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요? 바울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왔지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여인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냈지만, 그 여인의 주인들은 점을 쳐주면서 돈을 벌었던 수익이 끊어지자 바울을 붙잡아 관원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친 후에 옥에 가둡니다. 바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억울함, 원망, 불평, 분노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겁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안쓰럽고, 자신을 가둔 관원들이 안타깝고, 자신들을 지키고 있는 간수들이 불쌍했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가진 바울은 옥에 갇힌 것이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면 복음을 더 전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도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묶인 것이 벗어집니다. 간수가 졸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두려워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두려움과 중압감에 그는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합니다.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소리칩니다.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립니다. 바울은 생명이신 예수의 복음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고 확신에 찬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수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간수가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간수가 말한 구원은 삶의 근본적인 고통, 두려움, 공허함으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수가 볼 때에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바울은 갇혔지만 두려워하거나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원망과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지키고 있는 자신의 공허한 처지가 더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날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간수는 그 감옥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을 찾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외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은 복음을 그 사람과 그 집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 밤에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음식을 차려 주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합니다.


현대인들은 ‘구원’이라는 말 대신에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불안해하면서 힘겨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쾌락, 명예, 인기, 권력, 돈을 추구합니다. 물론 삶에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순간적이긴 하지만 즐거움과 만족감을 줍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허무함과 공허감이 감당할 수 없게 몰려옵니다. 왜 세상의 좋은 것들이 진짜 행복을 주지 못할까요? 우리는 육적이면서 또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존재로만 본다면 당연히 그런 세속적인 것으로만 채워도 괜찮습니다. 우리 영혼은 돈, 명예, 힘, 쾌락으로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을 생명으로 채워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채찍에 맞고 옥에 갇히기 전에 로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맞지 않고 옥에 안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디라도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삶의 부르심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과 대우를 굳이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맡깁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당당함, 자신감, 열정, 기쁨,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의 복음을 간수에게 전해줍니다. 생명을 살리는 특효약을 기쁨으로 받아든 간수를 보면서 바울은 얼마나 감격하며 기뻤을까요? 당신에게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특효약이 있습니다. 공허함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당당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기쁘고 확신 있게 전해주세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