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by 이도수 posted Sep 01,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당신은 선하게 살고 싶나요, 아니면 악하게 살고 싶나요? 그래도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지 않나요? 어떤 이유와 동기 때문에 선하게 살아야 하나요? 그런데 세속적인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면 부담이 있습니다. 물론 악하게 살면 더 큰 부담과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양심이 무디어지면 악한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끔은 한 쪽 눈 감고 살거나, 어느 정도만 양심적으로 살면 그래도 괜찮게 사는 것이 아닌가요? 언론에 가끔 나오는 무차별 살인, 강도, 성폭행,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니라면 괜찮게 산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선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딛2:2~9) 절제, 경건, 신중, 믿음, 사랑, 인내, 거룩함, 순전, 복종, 단정함, 바른 말, 본을 보임, 단정함, 신실함이라는 성품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가능한가요? 그리고 선하게 살면 도대체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인가요? 

 

어떤 이들은 인간이 착하게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불의한 경험을 하면서 악해 진다는 말을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보면 그렇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혀 의미 없는 말은 아니지만 내 경험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국내외 구제 봉사나 재난 구호를 해보면 까만 눈동자가 초롱초롱 하고 해맑은 어린 아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정말 착하고 순수해서 죄도 모를 것 같은 선한 눈동자입니다. 그렇지만 쌀과 의류와 생필품 등을 나누다가 물품이 다 떨어지면 그 아이들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도 맑고 선하게 보이던 눈동자가 무서운 분노의 눈동자로 바뀝니다. 혹시 자기는 물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질서가 깨지면서 서로 욕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키워본 부모들도 아무리 어린 아이일지라도 그 마음 안에 이기적이며 악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그렇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으며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살다가 멸망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백성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힘과 지혜를 받아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 백성의 인생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넘어서 특권의식을 갖게 됩니다. 율법을 받은 것에 우월의식을 가졌으며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함과 지식과 행위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과 형식과 비판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악하고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못하는 것으로 낙심하며 비관으로 살아간다면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4~5)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선하게 살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 받아야 하는 것이며 그리고 성령을 풍성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3:6)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우리 힘으로는 선할 수 없고 선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이념, 도덕, 윤리, 의지, 법, 규율 등이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