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던 시절이라서 기억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 여집사님께 집사님의 좋은 점을 두어 가지 말해주면서 약간의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전도사님은 늘 그렇게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면서 약간 저를 당황하게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처럼 어떤 분들은 칭찬을 해도 잘 안 받고 거절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제가 그렇죠’ ‘맞아요, 제가 그런 점이 있어요’하면서 더욱 더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까지 하기도 합니다. 칭찬이나 축복을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칭찬과 축복을 하면 감사하면서 잘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축복의 말을 하면 당신은 어떻게 여깁니까? 칭찬과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진심으로 해주는 말로 여기면서 잘 받는 편입니까, 아니면 겉으로만 저런 말을 한다고 여기는 편입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도 삶에 중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예민하게 받을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적절하고 지혜롭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축복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칭찬과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진심으로 해주는 말로 여기면서 잘 받는 편입니까, 아니면 겉으로만 저런 말을 한다고 여기는 편입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한나가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 제사장은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한나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입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소리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한나의 슬픔과 원통함과 격동된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엘리는 한나의 입이 아니라 그 마음을 주목했어야 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입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하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호통합니다. 영적 지도자의 영적 둔감함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영적 둔감함과 죄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는 두 아들의 타락과 부패의 심각성을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기에 교훈과 책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슬퍼하는 여인을 보면서 그 깊은 애통함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영적으로 둔감했던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영적 감수성이 더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엘리는 미안했는지 한나가 불쌍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고 축복합니다. 그냥 툭 던진 말이거나 영혼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영적으로 둔한 제사장이 내뱉은 그 말을 자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1:18) 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믿음인가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감사하게 받으며 믿는 순전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이 죽어가는 하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불러오시도록 했을 때에 자신의 집에서 직접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만 하시면 내 종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하시면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한나의 믿음도 그에 버금가는 듯 합니다.
한나가 어떻게 이 정도 믿음의 여인이 되었을까요? 이전에 브닌나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분노와 슬픔과 자괴감을 느꼈던 한나였습니다. 그래서 브닌나와 대적하면서 질투와 분노의 삶을 살아왔던 한나였습니다. 한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한나가 절망에서 일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통곡하며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 인해서 '은혜'라고 하는 한나의 이름처럼 한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서 은혜를 누리게 되니 그의 기도가 바뀌고 마음이 변하고 삶이 달라졌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 심정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토해냈던 것입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5)
누군가가 당신에게 축복과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면 ‘아멘’으로 받으세요. 혹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저주와 욕을 쏟아내면 받지 마세요. 요즈음 SNS에서 자신의 글과 게시글에 악플이 달려지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지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악플은 받지 않아야 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의 험한 말과 저주의 말에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듣고 받아야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찬송가 540장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말씀입니다. 나를 가장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신다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선한 말은 아멘으로 받고 나쁜 말은 거절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