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배우 차인표씨가 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장편소설을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소년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가 총칼에 짓밟히게 된 소녀를 구하려고 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열정적이며 순수한 사랑을 읽으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자신이 했던 약속을 꼭 이루고자하는 열의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도 부모님이나 배우자 혹은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 사랑의 원형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드디어 한나는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으며 아이를 낳아서 젖을 뗄 때까지 데리고 양육합니다. 그래서 젖을 떼고 여호와의 전에 있는 실로에 아들 사무엘을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평생을 드리겠다고 서원을 이행하게 됩니다. 잉태 전에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두루뭉술한 축복의 말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서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한나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과 동침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한나에게 엘리를 통해서 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 그들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셔서 그들에게 모세를 보내서 출애굽하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시고 역사하셔서 아들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신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요청하고 기도하는 것이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살리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32:11~14)
엘가나가 온 집 사람들과 함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때에 한나는 올라가지 않고 젖 떼고서 아이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보이고 여호와의 전에서 영원히 있게 하겠다고 남편에게 요청합니다. 엘가나는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삼상1:23)고 하고 한나는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젖을 뗀 후에 시행하게 됩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엘가나는 ‘소견에 좋은 대로’하라고 인정해주었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살았던 사사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문장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도 사사시대의 어리석은 모습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가 생각했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는 사사시대 백성들이 자기 욕심과 생각과 정욕대로 행한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한나가 생각했던 ‘좋은 대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선한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좋은(히: 토브)’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그래서 엘가나도 한나의 선한 소견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나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했지만, 그 소견은 하나님께 구한 것이며, 하나님께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아서 이루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소견을 이루고, 소원을 성취하고, 간구해서 얻어내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기도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당신이 주님 안에 거할 때에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