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의 마음 가는대로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가고 싶은데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살면 반은 좋고 반은 좋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해보았지만 일이 틀어지고 관계가 멀어지고 깨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느낌을 중시하는 사람은 그 느낌에 많이 의지해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마음과 느낌이 맞을 수도 있지만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있어서 전인격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또한 우리는 죄의 본성이 있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물론 일과 관계가 잘 풀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사람의 판단과 결정이 옳지 못해서 인류와 국가와 사회에 치명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즉 사람의 지정의가 완전하지 못해서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했던 사사시대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고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사람마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하였다” 공동번역에서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온갖 죄악과 부패와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시대였으며 입에 담기도 힘든 엄청난 타락과 죄악들이 판을 쳤습니다. 사람의 본성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렇게 ‘제멋대로 하는’일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이든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그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후에 나누어 삶아서 먹는 고기들을 탐욕스럽게도 세 갈고리로 걸러서 갈취했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도 전에 날고기를 중간에서 빼앗아 자기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엘리를 통해서 두 아들에게 책망과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시면서 그들의 욕망과 본성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애굽의 바로에게도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강팍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있는데 마찬가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버려두면 스스로 자신의 악에 빠져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를 향해서 강하게 책망하시며 그 가문의 몰락과 두 아들의 죽음까지 예고하십니다.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삼상2:34) 하나님은 레위 집안의 역사와 제사장 가문으로서의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안타까운 마음이셨습니다. 사명을 주었지만 멸시하고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두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존중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염두하시면서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2:35)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당신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찾아서 일을 맡기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자랐습니다. 사무엘은 성장하면서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 고민과 걱정, 슬픔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동고동락하는 느낌입니다. 오랜 친구, 절친, 오랜 세월을 진정으로 함께 한 부부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익도 손해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난도 함께 하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고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심지어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고 영광스러운 일도 맡기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면서 쉬고 누리며 동역하는 기쁨을 갖게 하십니다. 내 뜻이나 다른 사람의 뜻이나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가장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