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호전적이며 우세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물론 적군이 공격해오면 맞서 싸우는 것이 맞지만, 그 상황을 먼저 하나님께 고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텐데,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우려고 진을 쳤습니다. 그러다 그만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면서 4천 명 가량의 백성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남은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자 장로들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삼상4:3상)하며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았고 이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패배한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해서 처음부터 하나님께 여쭙고 인도함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지게 된 원인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준비부족, 능력부재, 무기부족, 리더십부재, 사기하락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니면 이스라엘의 부패와 타락 때문에 스스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죄악에 빠져있던 그들에게는 싸울만한 힘과 능력과 동기부여가 없었을 것입니다. 싸움에서 패한 것을 하나님 탓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쏟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불합격, 이별, 건강 문제, 사업실패, 투자실패 등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하나님 어찌하여 내게 이렇게 하십니까?’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그렇게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처럼 탓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이나 무능이나 준비하지 못한 것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화를 내고 원망 불평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잘 되면 내 탓 잘 안 되면 하나님 탓을 하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장로들은 잘못된 판단을 해서 그런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너무나도 어리석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역시 하나님께는 전혀 물어보거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삼상4:3하)라고 하면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오는 황당한 짓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전쟁터에 없어서 진 것인가요? 정말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오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너무나도 어리석은, 비 신앙적인, 욕망적인,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려는 신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이기적인 욕심을 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궤짝으로 전락하고 미신적인 부적과도 같이 사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율법도 믿음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생각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심지어 교단 차원으로 십자가를 강대상 전면에 붙여놓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렇게 귀하고 의미있는 십자가 조차도 자칫 우상이 되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합격, 이별, 실패 등 여러가지 문제를 만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먼저 자신의 처지와 상황과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정직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부족한 면이 있는지를 살핀 후에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해야 할텐데 어떤 사람들은 점쟁이나 무당을 찾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면 용하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돈, 성공, 관계, 건강, 미래 등에 대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점쟁이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의 성향과 분위기를 보면서 그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거나 두렵게 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얻고 싶은 수익을 얻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이라고 하는 관점으로 쉽게 오해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오해를 합니다. 모든 것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이, 끈질기게, 그리고 강청하는 마음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면 어떤 일의 성패가 우리에게 있다는 오해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된 것이라고 오해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판단과 비난을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강청하면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판단하셔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주권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치 우리의 종처럼 일처리하고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는 분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오해는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잘하면 상을 주시고 못하면 벌을 주시는 하나님, 즉 인과응보라는 원리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의와 정직과 공의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만들어지고 이루어지고 성장해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