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로 가득 찬 풍선을 받으면 빠른 시간 안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게임입니다. 자칫 물 풍선을 놓치거나 잘못 잡아서 터지기라도 하면 온 몸이 물에 흠뻑 젖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물 풍선이 아니라 돈이나 보석이 들어있는 풍선이라면 어떨까요? 그럼 어떻게든 그 풍선을 오래 가지고 있다가 자기 앞에서 터지기를 바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좋은 것은 옮겨오고 나쁜 것은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블레셋 다곤 신전에 머물면서 신전 안에 있던 다곤 신상이 땅에 엎어지기도 했으며 블레셋 성읍 사람들이 독종에 걸려서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무서운 재앙을 경험하면서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블레셋에게 법궤는 갖고 싶지 않은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술사들의 말에 따라서 두려운 마음으로 제사 드릴 수 있는 제물로 금으로 만든 독종과 쥐 형상을 수레에 함께 실려서 이스라엘로 보내게 됩니다. 새 수레를 만들어서 멍에 메어 보지 못한 젖 나는 소 둘에 메우고 블레셋과 접경에 있는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보내게 됩니다. 결국은 여호와의 법궤는 블레셋 땅 아스돗에서 가드로 그리고 에그론으로 보내지려다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보내집니다. 젖이 나는 암소가 새끼 송아지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수레를 메우고 벧세메스로 가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 그들은 과연 여호와의 법궤로 인해서 내려졌던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유다 지파에 속하면서 아론 자손에게 할당 되었던 지역이 벧세메스입니다. 그곳에 살던 레위인들은 벧세메스 사람들과 기뻐하며 수레를 메고 온 젖소를 잡아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 없는 젖소를 잡아서 드려서 율례를 범하는 일을 했을 뿐아니라 또 다른 큰 일이 터지고 맙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신기하게 여겨서 법궤를 들여다보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곳 사람들은 기쁨도 잠시, 슬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삼상6:19~20)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죽게 되는 참담한 재앙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는 누구도 서 있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법궤를 다른 어느 곳으로 보내 떠나보낼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자여호와의 법궤를 전쟁터로 옮겼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큰 패배를 당하며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블레셋은 빼앗은 여호와의 법궤를 다곤 신전으로 옮겨와서 행운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복을 원했던 블레셋은 오히려 혹독한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다시 여호와의 법궤를 이스라엘로 옮기려고 시도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갖고 싶은 것에서 버리고 싶은 두려운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여호와의 법궤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법궤가 있는 곳에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만나는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즉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이면서 복을 주시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이며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우리는 옮겨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블레셋 사람들처럼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온다고 하면서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옮겨오면 안 됩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고 유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옮겨오고, 불편하고 자신에게는 맞지 않다고 여겨지면 옮겨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내 마음으로 옮겨와야 하며 그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설사 우리의 생각과 합리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법궤의 본질을 옮겨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회개하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과 죄악이 있다면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