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백성을 축복한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느보산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코 앞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요단 동편 모압에 있는 산입니다. 정작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던 모세는 안타깝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처음 부르실 때에,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모세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의 궁전에서 왕자로 지내다가, 애굽 사람을 쳐 죽여서 미디안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 떼를 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 되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거듭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입이 둔하고 혀가 뻣뻣해서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말 잘하는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와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못한다고 하자, 하나님은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셨고, 모세의 손에 나병을 들게 하셨다가 다시 치료하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제서야 모세는 마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세에게도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바로와 투쟁하면서,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광야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로서,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열심과 그 땅을 가고자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을 것입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거하던 어느날,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어서 죽게 되었다고 원망 불평합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하나님이 반석을 가리키라고 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반석을 지팡이로 치며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고 화를 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모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그렇게 소망하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로만 엄포를 놓은 것이 아니라, 정말 모세는 가나안 땅을 코 앞에 두고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고 아쉬웠겠습니까?
모세는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느보산에서 원망 불평할만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서운함이 있었겠지만, 백성들에게는 더더욱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가나안 땅인데, 그래도 백성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결코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쌓인 원망과 상처를 그대로 쏟아 부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아들들을 앉혀 놓고 유언을 하는 장면이 창세기49장에 나옵니다. 야곱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순종하지 않았던 장자 르우벤을 비롯해서, 레위, 시므온 등 유다와 요셉을 제외한 모든 아들들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와도 같은 유언을 했습니다. 르우벤을 향해서는 “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레위와 시므온을 향해서는 “너희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리라”. 다른 아들들에게도 “샛길의 독사로다” “물어 뜯는 이리로다”라고 폭언을 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서운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유언할 때 쏟아버렸습니다. 야곱은 젊었을 때보다는 많이 성숙했지만, 역시 야곱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넘쳤습니다.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백성들이 들어가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은 못 먹고, 못 배웠어도 자식만큼은 먹이고 가르치려고 하는 그런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모세를 좋아합니다. 그의 지도력이나 능력도 좋지만, 그의 온유함이 참 좋습니다. 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했던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신33:26)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입니다. “여수룬이여” 즉 “이스라엘이여”.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즉, 여수룬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서 읽으면 됩니다. “OO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는 겁니다. 왜요? 나를 도우시려고, 여러분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는 선포합니다. 2014년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도우시는 해”라고 선포합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떠오릅니다. 요즈음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어떤 목적지를 찾아갈 때는 내비게이션을 유용하게 잘 씁니다. 내비게이션 없이 이전에는 어떻게 운전하고 찾아다녔나 모르겠어요. 목적지만 입력하면 요즈음은 거의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알려줍니다. 지금 막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길은 지금 사고가 났고, 공사중이고, 밀리는지를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정보를 적용해서 안 밀리는 길로 알아서 안내해줍니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내비게이션의 말씀(?)만 들으면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몇 미터 앞에서 좌회전하라고 하면 좌회전하면 되고요. 우회전하라고 하면 우회전하면 되고요. 직진하라고 하면 직진하면 됩니다. 위성과 지상에서의 정보를 조합해서 내비게이션은 운전자에게 안내를 해줍니다. 과학 기술이 첨단화하면서 개인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과학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랍고, 신비롭고, 위대한 능력과 지혜를 가진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입니까?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최소한 운전면허가 있어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를 가진 분은 많으시겠지만, 인생 면허를 가진 분 계신가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해 보고, 살아 보고, 여기 저기 욕심대로 감정대로 이성대로 인생을 끌고 다녀보는 겁니다. 그러다가 사고도 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비껴서 갔지만 또 다른 사고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정하시겠지만, 인생 길에서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우리 언제까지 내 마음대로 내 감정대로 내 욕심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운전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 하늘을 타고 위엄을 나타내시는 그 분께 인생의 운전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내비게이션에 따라 성능과 사양이 달라서 잘못하면 어려움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자주 업그레이드도 해야합니다. 업그레이드를 안 하고 있다가 길이 새로 생겨서 찾아가는데 애먹은 적도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가끔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업그레이드가 더 이상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만든 내비게이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과 능력과 판단력과 생명력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내비게이션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십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처소는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환난과 곤고와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피난처 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나의 대적을 쫓으시면서 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대적이 무엇입니까? 괴롭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 사람이나 사건이 무엇입니까? 소심함, 불신, 욕심, 이기심, 시기심, 질투심이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염려, 걱정, 근심, 두려움이 대적일 수 있습니다. 혹시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으시며 멸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여러분의 우물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말씅입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곡식과 포도주가 가득한 땅이며 하늘에서는 이슬이 내려진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한 해의 농사를 풍성하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며 특별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방패이시며 승리를 주시는 영광의 칼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고난도 시련도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서 막아주십니다. 어떤 어려움도, 대적도, 시험도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칼이 되십니다. 여러분의 대적이 복종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적의 높은 곳을 밟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14년도를 하나님께 맡기시겠습니까? 아니면 2014년의 운전대를 내가 붙잡고 있겠습니까? 여러분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셔서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서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이 있으신 하나님,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를 도우시려는 선한 계획이 있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비게이션을 쓰면서 한 가지 더 은혜를 받는 것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말씀하시면 왠만하면 가라는 대로 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더 좋고 빠른 길이라고 생가해서 다른 길로 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갔다가 잘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말씀한대로 안 가면 내비게이션이 뭐라고 하지요? 왜 나의 말을 안 듣고 당신 마음대로 하느냐고 화내지 않습니다. 내 말씀대로 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안내도, 인도도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로 갔으면, 그 위치에서 다시 검색해서 안내를 해줍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그렇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내 맘대로 하다가 잘못된 길로 갔을 때에, 하나님은 그래 한 번 당해봐라! 네 맘대로 해봐라! 하면서 인도하심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그 위치에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실수한 우리를, 범죄한 우리를, 어리석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어 버리지 않으시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세우셔서 다시 인도하십니다. 이제껏 그냥 살았는데 지금부터 말씀대로 산다고 뭐가 되겠냐는 생각입니까? 지금부터 내비게이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인도함에 따라서 가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겁니다.
우리 이제 다가오는 2014년도에는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받는 놀라운 평강과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한 해가 되길 축복합니다. “2014년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도우시는 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