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에발산이 먼저인가?

by 이도수 posted Oct 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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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녀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한 가지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싶어서 입니다.
자녀를 기르면서 겪는 숱한 희로애락을 통해서
아버지로서 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더욱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신명기 27장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이제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니는
그런 아기를 바라보는 아버지 말입니다.

아기가 아무거나 집어서 입에 넣으려 하기도 하고
삐죽 튀어나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딫히려 하기도 하고
전기줄을 만지거나 나이프나 포크를 그냥 집으려 하기도 하고

아기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그런 것들을 할 수 없도록 치웁니다.
아기에게 "애비"하면서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소리도 질러서 아기가 놀라 울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하는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요단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먼저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2절)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3,8절)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 위에 기록한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하도록 신신당부하십니다(10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 패로 가르게 합니다.
한 패는 그리심 산에 서서 축복을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으며
또 한 패는 에발 산에 서서 저주를 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말하게 하신 후에
에발 산에서 저주를 말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 반대로 하셨습니다.
에발 산에서 저주를 말한 후에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왜 저주에 대한 말을 먼저 하게 하셨을까?
이왕이면 에발 산에서 축복의 말을 하게 하신 이후에
저주를 말해도 될텐데라고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논란이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어린 아기와 같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가나안 땅은 수많은 우상과 불순종과 음란과 범죄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우상과 죄악을 진멸하여야 했습니다.

이제 애굽 땅을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 어리고 기어다니는
어린 아기와도 같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지 말 곳과
만지지 말 것과 입에 넣지 말 것을 일러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복을 주시기 위한 터 다지기 작업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부모와 이웃을 향해서
어떻게 긍휼을 베풀 것인가와 성도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아기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후에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다소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자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고
갈 수 있는 곳도 데려 가시고 먹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복을 마음껏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마음껏 준비하신 복으로 흔들어 채워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