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이신 하나님

by 이도수 posted Oct 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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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할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서로 밀고 댕기고 화내고 삐지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합니다.
그러나 서로 대화와 인격을 가지고 연애를 합니다.
결혼해서도 연애할 때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지지고 볶고 네가 잡니 내가 잡니, 남자는 결혼 초기에 잡아야 하느니 어쩌니 합니다.
역시 그 관계에는 대화와 인격이 있습니다.
자녀들과는 어떻습니까?
어릴 때도 그렇겠지만 철이 들면서 말이 통하고 성숙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것입니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발동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신명기 29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이 행하신 일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2-3절)
"주께서 사십년 동안....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주었나니"(5-8절)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행하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자발적이며 즐겁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격적인 순종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4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지도 못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격을 발동해서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두뇌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는 메모리칩을 주셨다면
우리의 인격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는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삐지고 토라지고 밀고 댕기고 하는 과정을 겪지만
그것이 있어야 연애가 되고 결혼이 됩니다.
남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게 하는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관계입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깊게 형성되어지려면 인격적으로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발동해서
서로간에 관계가 형성되어져야 진정으로 성숙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인격의 발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눈과 귀로 듣고 하나님을 깨달으며 신뢰하길 원하십니다.

주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인격적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다 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