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희망을 보기 원합니다

by 이도수 posted Dec 2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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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의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는
내가 도망자의 삶은 살지는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 삶이 두려움과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가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도피자의 삶을 삽니다.
고향을 떠나서 심지어 이스라엘땅을 떠나서
블레셋땅까지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잘못을 범해서가 아니라
그저 억울하게 도망다니는 신세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할만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먹을 떡조각을 구합니다.
그곳도 떠나서 아기스왕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대문을 그적거리면서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척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신세가 말이 아니었습니다(삼상21장).

어제 사랑의 집 3호에 살던 남자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소리 소리 지르면서 놓고 간다고 했던 가전제품들을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냉장고, 텔레비젼,세탁기...
열심히 우리 집사님들이 찌든 때를 다 닦고 A/S까지해서
새 것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말입니다.
술을 먹고 찾아 온 그 사람은 세상을 향한 불만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도망간(?) 부인과 자녀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심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생명을 위협당하면서 도피자의 삶에서도 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희망과 기쁨과 찬양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심정을 노래한 것인 시편34편입니다.
그는 소망을 보며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 위한 혹독한 훈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너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처럼,
요셉에게 노예로 팔림과 감옥과 온갖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처럼,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을 한 것처럼,
다윗에게 광야의 삶은 다윗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후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후손과 재물과 명예와 권세의 복을 주신 것처럼
다윗에게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또한 곤고한 사람들을 돌아 볼 수 있는 긍휼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복은 어려움과 곤고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관계가 더욱 깊이지고 성숙해 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어떤 곤고하고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실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장차 올 영광의 면류관과 비교할 수 없도다" 라는
소망과 감사와 찬양이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지금 상황이 다소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희망을 바라보며 오히려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장차 올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상황으로 인하여서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