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by 이도수 posted Mar 11,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왕하5장은 우리가 잘 아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1절).
하나님께서 나아만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던 큰 용사였습니다(1절).
나아만이 교만했는지 어떤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이 누리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간혹 삶 속에서 일이 잘 풀리고 잘 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업무가 잘 진행되고 사업이 번창하고 관계가 잘 풀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나아만이 왜 문둥병에 걸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우리 삶에도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고집사님이 뇌종양으로 너무도 어렵고 안타까운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는 고집사님이 뇌종양으로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우리의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 이렇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을 복의 통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작은 계집 아이의 말도 붙잡는 처지가 되었습니다(2-3절).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람왕에게 말하고는 아이의 말에 따라서 이스라엘로 건너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심히 불쾌하여 분노합니다(11-12절).
그래도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나와서 얼굴도 보지 않은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씻으라고 하니 기분이 상했습니다.
나아만은 분이 나서 그냥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종들이 만류하여서 요단강에서 몸을 씻게 되고
나아만의 몸은 어린아이의 살 같이 개끗하게 됩니다(14절).

나아만은 문둥병이라는 어려움을 복의 통로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고 겸손하니까 하나님께서 문둥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문둥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나아만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15절)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7절)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됩니다.

나아만은 문둥병만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자녀문제로 기도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십니다.
더욱 훈련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십니다.
그것이 저에게 복의 통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때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유도 알지 못하는 문둥병이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할지라도
원망하며 왜 이런 어려운 환경을 주느냐고 한탄하기보다는
그 어려운 환경을 복의 통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내 환경 가운데 원인과 이유도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서 불평과 원망의 도구로 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의 통로로 삼기를 원합니다.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