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소리가 들리십니까?

by 김세열 posted Apr 09,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팔이 불려진다. 
계8:6-9:12

오늘 본문은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로 시작되어 있습니다. 먼저 저는 왜 천사들이 수많은 소리나는 악기중에 나팔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악기들중에 소리나는 제금과 수금과 퉁소와 소고도 있는데 왜 나팔을 들었을까요? 일곱 수금든 일곱천사가 수금뜯기를 예비하더라 하지 않고 나팔이라고 한 이유가 있을까요? 있다면 나팔만이 가지는 특별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팔 소리에 익숙한 족속입니다. 그들은 해방과 기쁨을 알리는 날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일곱 나팔과 일곱천사를 상상해보면 우리는 희고 우아한 천사와 아름다운 금빛의 트럼펫처럼 생긴 우아한 금나팔을 그릴 것입니다. 누군가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할 때 일제히 하늘을 향해 치켜든 나팔들, 귀빈의 방문을 환영하며 경쾌한 빵빠레를 울리는 나팔을 쉽게 떠올릴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나팔이 있습니다.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위에 나팔을 불라" 민 10:10 해방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러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위기 23:24

대속죄일로 그 절정을 이루는 칠월의 첫날에 이스라엘을 나팔을 부어 회개의 기회가 시작됨과 새해가 시작됨을 선포했습니다. 나팔절입니다.

주님의 천사들과 재림할 때 성도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 온 세상에 그 나팔이 울려퍼질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즉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나팔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나팔은 그런 아름답고 영광스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어두운 분위기에 무서운 나팔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나팔에는 피섞인 우박과 불로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윕니다. 자연재해로 농작물이 망쳐지고 초목이 죽습니다. 애굽의 바로에게 내려진 재앙에도 우박이 있으나 지금은 피가 섞인 우박이니 훨씬 죽음이 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애굽에만 내렸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인 재앙입니다. 일곱인에서는 사분의 일이었으나 지금은 삼분의 일로서 재앙이 더욱 극심해진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둘째 나팔소리가 나자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지 일이 피가 됩니다. 이 재앙은 격렬한 해풍과 물고기와 기타 바다 생물들의 떼죽음, 각종 배들의 침몰과 유전시설의 붕괴, 바다의 핵폐기물 방류등이 포함되는 재앙입니다. 역사적으로 바다와 관계된 모든 재앙을 총칭합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 샘의 삼분이 일이 쑥처럼 되어 사람들이 죽게 합니다. 이제 육지와 바다에서 내룩의 수로인 강과 샘과 저수지에 피해를 받습니다. 햇불처럼 타는 별이란 쑥은 매우 쓴맛을 내는 식물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쓰라린 독이 있으며 사람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애굽에서의 재앙에는 나일강이 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샘은 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샘마저 오염되었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 너무 잘 이해 될 것입니다. 옛날에 물을 돈주고 사먹는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강물이 산업공장 폐수와 하수로 오염되어 물을 정수기로 걸러먹고 돈을 주고 사서 먹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습니까? 물이 오염되었습니다.

넷째 나팔에는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이 일이 어두워지고 비췸이 없게 됩니다.
땅과 바다와 강과 샘과 하늘에 이르기까지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재난을 경고합니다. 
지금부터 백년전에 산업혁명이 가속화 될 때 어떤 이가 석탄사용으로 인한 탄산가스의 증가로 공기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많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얼마 전에 밤하늘을 쳐다보니 백개 정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황사로 인해 대낮에도 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스모그와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공기오염의 탓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네가지 나팔소리가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킴으로 발생되는 재난과 무관하지 않음을 여러 가지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경오염과 생태학적 재난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나팔을 불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을 향해 불려지는 나팔소리를 듣고 있었습니까? 자연재해의 소식들을 들을 때 그것이 다름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였다고 분별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까? 앞으로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환경오염 으로 인한 재앙의 소식들, 육지와 바다와 강과 하늘의 파괴되는 소식들을 듣게 되면 천사들의 일곱나팔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여러분이 환경오염을 하나님의 나팔로 들을 수 있다면 이제 하나님이 왜 이처럼 나팔을 부시는 가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나팔을 불게 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전쟁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위기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소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 불었던 나팔을 기억할 것입니다.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 모압왕을 죽이고 에브라임산지로 도망한 후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을 소집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나팔을 불며 미디안 진지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이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이유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민족간의 전쟁뿐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전쟁 개시일로 동일하게 취급하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즉 전쟁 개시일로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란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
요엘은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욜2:1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날에 나팔을 불어 땅의 거민이 떨게 하라고 하십니다.

전쟁에서 파숫군의 사명은  적의 침공을 보면 나팔을 불러 전쟁의 개시를 선언하며 위기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파숫군으로 삼았다고 말씀하시면서 비유를 해주었습니다.
2. [겔 33:3]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3. [겔 33:4]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4. [겔 33:5]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5. [겔 33:6]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파수군이 성루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의 임하는 칼을 발견하고 나팔을 불어 경고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사명을 가진 영적인 파숫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에스겔이나 스바냐나 요엘의 선지자들을 불러서 당신의 백성들을 깨우고 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나팔불어 경고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소리가  나팔소리의 참된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팔소리 후에 무서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나팔 소리에 대하여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 나팔 소리가 두렵습니까?  아니면 반갑습니까? 나팔소리에 대해 거부감을 갖습니까? 좋은 호의을 갖습니니까? 아마 일단은 전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나팔소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보십시오. 파숫꾼의 나팔소리는 칼이 임하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두렵고 무서운 재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팔소리조차 없이 칼과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가정해보십시오. 훨씬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재앙을 경고하는 나팔소리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소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에게 지시되어 불려지는 천사들의 네 나팔소리는 죄악가운데 죽지 않게 하려고 살리기 위한 소리입니다. 따라서 나팔소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구원의 초청입니다.
따라서 나팔소리는 있어서는 안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점점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1세기의 바울의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며
우리는 이 18가지의 악의 모든 경우의 예를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신문의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아니 어쩌면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데에 이의가 없을 줄 압니다. 

성경은 말세에 세상사람이 하는 세 가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 얼마나 틀림없는 진리입니까?
정말 모든 사람이 자기를 사랑합니다. 아니 미치도록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고 남이 당할 고통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무정하고 참소하도록 자기를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사랑하는지, 아이들부터 청소년과 노년과 여자와 남자와 가난한 자부터 재벌까지 무식한자와 유식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 돈을 쫓습니다. 돈 때문에 공부하고 돈 때문에 일류대학과 일류회사를 지원하고 부동산과 주식과 복권과 펀드을 사고 팔아 돈을 쌓는 것이 온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오직 인생의 최대 목적이 돈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 때문에 친구와 가족끼리도 싸우고 죽이고 울고 웃습니다.

또 쾌락을 위해 얼마나 사회가 소모합니까? 사회의 수많은 일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향락 산업에 그물처럼 연계되어 있습니다. 방송과 연예와 스포츠와 도박과 술과 담배와 마약과 섹스와 레져와 열거할 수 없는 쾌락의 산업들이 무수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전도해보십시오. 바빠서 교회 갈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돈버는 일에 바쁘고 노는 일에 바쁜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돈버는데 밤늦도록 일하고 돈쓰고 노는데 밤늦도록 고생했으니 일요일에는 가족끼로 놀러가거나 실컷 자야되기 때문에 바쁜 것입니다. 모두 자기를 사랑하는 일에 너무 바쁜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사랑하는 일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할 시간적 겨를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믿고 교회나가자고 아무리 외쳐도 세상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악속에 있다면 곧 멸망한다고 경고해도 잘 듣지를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을 수가 없다는 사도 요한의 말이 실감이 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사람들은 어둡고 시끄러운 디스코장에 들어가 정신없이 춤추고 취해버린 사람들과 같습니다.
여러분중에 고고장 디스코장 나이트클럽 등등에 가보신 분이 있을 줄 압니다. 가보지 않았어도 텔레비젼이나 영화에 나오므로 모두 알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수백명의 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야단입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음악소리와 울긋 불긋 빙글 빙글 번쩍 번쩍이는 갖갖지 조명, 자욱한 담배연기 등으로 정신이 현란해집니다. 거의 정신이 마취되어 갑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 해야 되는 디스코장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 삼풍백화점처럼, 뉴욕의 무역센터빌딩처럼, 선박 타이타닉호처럼  이 디스코장이 곧 일시에 무너져 완전히 파괴되는 붕괴가 예상된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사람이 놀랍게도 그 사실을 알고 디스코장에 가서 소리쳤습니다. 곧 이 디스코장이 있는 건물이 무너진다. 그곳에서 빨리 나와 생명을 구원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시끄러워서 그의 말을 거의 잘 듣지 못합니다. 너무 취한 사람들은 듣긴 들어도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들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말이 믿기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쾌락이 너무 좋아 그곳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곧 그 건물이 붕괴될 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붕괴되어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도무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건물이 붕괴되어도 일시에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붕괴되는 것입니다. 즉 붕괴전에 전조를 가지고 붕괴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건물의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약간의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조명등 몇 개가 갑자기 퍽하고 꺼져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술잔과 탁자가 몇번 부르르 떨렸습니다. 이 때 이상을 감지한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갔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리고 큰 진동과 함께 1/3의 전등이 꺼져버리고 1/3의 많은 테이블이 넘어지고 1/3의 술잔과 병들이 엎질러 지고 다시 조용해 졌습니다. 이제 비로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환경재난은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말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곧 무서운 멸망의 날,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의 나팔소리입니다. 지구의 멸망전에 지구를 흔드는 것입니다. 이 나팔소리 때문에 비로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알고 구원을 위한 시도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곳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환경재난이 주는 경고의 나팔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나팔입니다. 땅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치는 경고입니다. 돈과 향락과 귀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사람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입으로 욕과 저주를 담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쓸모 없는 일로 낭비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하는 나팔입니다.

삶의 환경 전부를 흔들어 놓음으로써 회개치 아니하면 모두 이처럼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의 나팔입니다. 나뭇가지 위에 작은 새집이 있습니다. 뱀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그 나무를 흔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새는 위험을 느끼도 날라가 위기를 피합니다. 하나님은 이러첨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을 위해 지구를 흔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재난입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빚어진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원인이 된것도 많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구원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그것이 회개를 위한 경고의 나팔이라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나팔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재림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지진과 재난이 있었지만 정말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재난이 더욱 커지고 극심해졌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와 엘리뇨 라니뇨등의 기상이변과 자연 이변현상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이런 소식에 일단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 떠는 자가 되어선 안됩니다. 자연재앙의 나팔소리를 들을 때 여러분은 궁극적으로 들려올 마지막 나팔 소리를 대망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려날 때 새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가 거하는 바 새 질서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재해를 접하면 이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다시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불안한 터요 참된 피난처가 없음을 상기하십시오. 이 세상위에 너무 많은 땅을 사고 너무 많은 것을 쌓기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투자하지 마십시오. 사는 동안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천국을 위해 쌓고 천국에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깨끗이 정화하고 보존운동차원이 아닙니다. 그것도 삶에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영적인 오염과 죄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즉 죄와 허물로 더렵혀진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촉구운동에 그리스도인들이 더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에게서 들려지는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파숫군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세우셨습니다. 적의 공격을 알리는 성루에선 파숫군이 나팔을 불어 자신의 동족의 생명을 살리는 자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신호를 알고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금도 세상가운데서 자고 있습니다. 환경의 재앙과 오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데만  열심입니다. 결코 하나님이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된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화를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죄악가운데서 죽고 말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화를 전하는 것을 보십시오. 요한은 독수리의 소리가 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가 요한에게 전달되듯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화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며 지금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게 주신 세상사람이 갖지 못한 청각과 시각과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안테나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스피커입니다.  우리만이 영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안테나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칠 스피커가 되어야 합니다. 안테나를  드높이 세워서 그들에게 다시 전해야 되는 자입니다.

요한의 사명처럼 에스겔처럼 수많은 선지와 사도들처럼 우리의 사명은 그들을 깨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낸 것처럼 이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어 보내셨습니다. 왜요? 그들에게 소리를 쳐서 하늘의 음성을 듣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잠자는 그들을 깨워야 합니다.  안돼면 그들의 몸을 흔들어 깨우고 그것도 안돼면 찬물을 얼굴에 끼얹어서라도 깨워야 합니다. 깨어나면 살 소망이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성령님의 은헤요 역사입니다. 그러나 깨우는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기도하는 일도 우리의 일입니다. 전하는 일도 우리의 일입니다.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나지 않을 분이 있겠습니까? 혹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나 부모가 없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거의 없을 줄 압니다. 교회는 다녀도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의 심판과 새하늘과 새땅을 의심하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 그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