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꾀를 넘으시는 하나님

by 이도수 posted Aug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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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방법으로 사람을 속여서 잘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건이나 사람들이 많아지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만 바보같이 사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나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해 안 보려고 편법과 부정에 동조해 버리거나, 눈 감아 버리기도 합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 되고 성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잘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4년 동안이나 라반은 두 딸을 주었다는 이유로 조카인 야곱을 마치 종처럼 부렸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가겠다고 하자 좋은 종을 놓치지 않으려고 라반은 그제서야 품삯을 정하자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제안하기를 앞으로 태어나는 것들 중에서 양 떼 중에서는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과 염소 떼 중에서는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을 갖겠다고 합니다. 양들은 보통 흰 색이지,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색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염소는 오히려 검은 색이 많지, 점 있거나 아롱진 것들은 많지 않습니다. 야곱은 우성이 아닌 열성의 양과 염소를 갖겠다고 제안한 겁니다. 야곱이 그렇게 제시하자 라반은 옳다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또 다른 착취를 하기 위해서 꾀를 냅니다. 염소와 양 중에서 야곱이 말한 그런 무늬가 있는 것들은 다 골라서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습니다. 아롱지고 점박이 같은 무늬가 있는 양들이나 염소들이 있어야 그런 양이나 염소를 낳을 텐데, 야곱이 치는 양떼 중에서는 그런 종자들을 다 없애 버린 겁니다. 그리고 거리가 사흘길이나 떨어진 곳에서 야곱에게 양떼를 치게 했습니다. 라반은 혹시라도 야곱이 무늬 있는 양과 염소를 훔쳐가거나 서로 섞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멀게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러니 양과 염소가 무늬 있는 새끼를 낳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 것입니다. 원천적으로 야곱은 본인이 제시한 양이나 염소를 얻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노예계약입니다. 그런데 라반은 그런 계약 조차도 위반하면서 철저히 야곱을 착취하려는 악한 술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야곱이 나무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습니다. 그리고 양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그 무늬 있는 나무를 보면서 새끼를 배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새끼를 배니 양과 염소들은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양 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였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아주 많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썼던 이 방법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야곱의 말처럼 하나님이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서 야곱에게 주신 겁니다. 야곱이 어떤 나무로, 껍질을 얼마나, 어떤 각도로 벗기고, 어떤 높이에. 어떻게 세우고, 어떤 주문을 해야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르쳐 주셨든지, 야곱이 어디서 들었던 민간요법으로 했든지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도우셨습니다. 야곱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라반을 막으셔서 야곱을 헤치지 못하게 하셨고, 라반의 것을 빼앗아서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도망쳐서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약속을 하나님은 이루어 가고 계신겁니다.


하나님은 라반의 비열함, 속임, 잔꾀를 계속 보고 계셨습니다. 두 딸을 가지고 야곱을 속이고, 계속적으로 노동을 강요하고 착취해온 라반의 악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야곱도 자기 생각과 열심이 너무 앞선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야곱의 성실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야곱과 같이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하고, 목회하면 됩니다. 잘 안 된다고 괴로워하면서 낙심하거나, 잘 된다고 교만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야곱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게 하십니다.


야곱처럼 정해진 규칙대로 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알아주지도 않습니까? 열심히 일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는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라반의 속임수와 잔꾀를 넘으시고 이기신 하나님께서 이 땅의 속임수와 잔꾀도 이길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 구조적인 시스템의 잘못 때문에 손해본다고 굴복하지 마세요. 동조하지 마시고, 휩쓸리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결국 이기게 하실 겁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