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네가 이겼다!"

by 이도수 posted Sep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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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요. 부모가 힘이 없어서 혹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자녀의 고집을 꺽기가 쉽지 않아서 나온 말입니다.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자녀의 간절한 바람이므로 져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데 무작정 떼를 쓰는 자녀가 안쓰러워서, 자녀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부모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들이 그런데,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준비합니다. 암염소가 이백, 숫염소가 이십, 암양이 이백, 숫양이 이십 등등해서 무려 550마리의 가축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각각 몇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뒤에 쳐졌습니다. 야곱은 준비한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려는 전략으로 예물을 앞서 보내고 가족들과 밤을 지냅니다. 그러다 그 밤에 가족들을 얍복 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홀로 남습니다. 홀로 남은 야곱이 한 사람과 치열한 씨름을 합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 즉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자신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끈질기게 붙잡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이름을 듣고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하고 야곱에게 축복하고 떠납니다.

 

전통적으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사건이 야곱의 간절한 기도이며, 복을 받으려면 그 정도는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는 해석을 많이 해왔습니다. 내 어렸을 때에도 야곱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는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기도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하나 씩은 뽑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기도했습니다. 금요 철야기도를 저녁에 시작하면 새벽1~2시까지 한 후에 잠깐 쉬고, 새벽4시에 또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수련회를 가면 밥만 먹고 집회에만 참석해야 했습니다. 야곱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쳤고,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물론 야곱의 씨름을 통해서 간절함과 열정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가 20년 전, 30년 전의 그 뜨거운 열정, 간절함이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우리 선배들의 열정과 뜨거움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씨름을 해석하면서 야곱의 지금까지의 삶을 안다면, 야곱의 간절하고, 열정적인 간구를 배워야 한다라고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잔꾀, 자기 열심, 노력, 속임수 때문에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야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면서 믿음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가라고 해서 가고는 있지만 야곱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20여 년 전 벧엘에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고향으로 가라하시며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들, 즉 여호와의 군대를 보여주시면서 에서의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야곱을 호위하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불신과 두려움으로 잔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한편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야곱입니다.

 

야곱의 씨름은 야곱의 인생을 한 장면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씨름하듯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야곱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평안하게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하고 있습니다. 몇 떼로 나누어 에서에게 잘 봐달라는 뇌물을 보내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눈에 띄지 않는 밤에 가족들과 이동을 했습니다. 좋은 전략일 수 있지만, 야곱은 두려워하면서 하고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홀로 하나님의 사자와 처절한 씨름을 벌입니다. 복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의 씨름에서도 복을 요구했습니다. 에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며, 복을 주지 않을 경우에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집요하게 붙잡았습니다.

 

야곱은 결국 이깁니다. 승리합니다.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까지 얻어냅니다.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고, 에서와 싸워서도 이겼고, 아버지에게도 이겼고, 라반과 그의 아들들에게도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야곱아, 네가 이겼다! 내가 졌다” 그런데 야곱이 정말 이긴 건가요? 누구와도 싸워서 이긴 야곱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나요?

 

하나님과 싸워서 이기면 좋습니까?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지고, 이기고하는 싸움의 대상인가요? 더 쉬운 예를 들어서 자녀들이 부모와 싸워서 이기면 좋습니까? 부모 이겨먹는 자녀들이 잘 되던가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녀가 잘 되던가요? “이건 아닌데” “제가 왜 저러나” “어련히 알아서 줄텐데” “아직 때가 아직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 원하는 가장 첫째가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자녀는 깨닫지 못할 때, 자녀 그 자신보다도 더 자녀가 잘 되기 바라는 분이 부모입니다. 부모 이긴다고 잘 되지 않습니다. 부모 이겨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을 이겨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 이기는 부모 있던가요?  부모가 싸우자고 덤벼드는 자녀를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먹으려고 했던 야곱아" "사람들과도 겨루어 이겨먹으려고 했던 야곱아" "그래 네가 이겼다. 지렁이같은 너 야곱아" 야곱은 지렁이처럼 발버둥치며, 몸부림치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져주신 겁니다. 떼를 쓰는 자녀를 부모가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이겨먹고, 지배하는 승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제는 속이는 자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결코 싸우고, 겨루고, 씨름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며, 당신을 좋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경배, 신뢰의 대상이지 싸우고, 협상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야곱은 사람과도 겨루고, 경쟁하고, 씨름해서 이겨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싸움닭으로 사니 얼마나 힘듭니까? 사람은 경쟁과 싸움의 대상이 아니요 사랑하고 섬겨주는 대상입니다. 하나님 이겨먹으려고 하지 맙시다. 사람들도 이겨먹으려고 하지 말고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