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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지요. 믿음을 배우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살펴보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당신을 믿은 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의롭다고 여기는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나 확신이 아닌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근거로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 그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감정과 경험, 그리고 세상의 가치관과 상식이 하나님의 약속과 상반되어서 앞으로 나아갈 만한 어떤 근거도 없을 때조차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볼 때 어떤 소망이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곳에 소망이 있다고 하신다면 소망을 가지고 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18~20)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여주시며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고 하셨던 말씀을 그는 믿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어서 아이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것은 창조의 행위인 동시에 부활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상태에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죽어있던 생명을 살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에 아들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과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후손을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굳게 믿었으며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의는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위함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의로 여겨진다고 말씀합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언이고, 은혜의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생명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감사로 이끌게 됩니다. 우리에게 부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고 있나요? 예를 들어서 자녀들이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좋아하던가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용돈 조금 더 주거나 핸드폰 요금제 올려주면 무척이나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큰 것을 받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작은 것에 과도하게 일희일비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고 감격해도 그 은혜를 다 기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과 직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우리 모두의 삶을 분명히 이끌어 가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 평생의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