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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갈릴리에 돌아온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나섭니다. 다른 제자들도 함께 배를 타고 나갑니다. 그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육지에서 누군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 말을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니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요한이 '주님이다!'라고 외치자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들어 예수님께로 급히 헤엄쳐갑니다. 예수님은 육지에서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고 계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시며 배고픈 제자들을 먹이시며 쉼과 위로를 주십니다. 식후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라보십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했을 때, 그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뭐라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릅니다. 예수님께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해서 몸둘 바를 몰라합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언제나 시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아시기에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솔직하고 분명한 마음을 물으십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아가파오’로 사랑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즉 절대적이며 완벽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필레오’로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필레오'는 친구로서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사랑입니다. 그로서는 가장 솔직하고 분명한 고백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가파오’의 사랑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호언장담하면서 할 수 있다고 했을텐데 말입니다.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때에,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세 번을 물으시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부인을 다 씻어주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베드로는 죄송스럽고 부끄러웠지만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필레오’로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는 ‘필레오’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며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완벽하고 온전하게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죄송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무엇보다 최우선인가를 확인하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면 됩니다. 진실하고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외면하고, 속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해드리는 모습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열정과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도 사랑스럽습니다. 배우자, 자녀, 형제, 동료, 성도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자식도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식이 무거운 짐, 귀찮은 존재,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여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맡겨주신 사명도 행복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혹시 사명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특히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