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네가 하는 것이 맞아’ ‘네가 그렇게 하면 돼’ ‘괜찮아, 네 인생은 네 것이야’라고 하는 말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들이 멋지고 감동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책임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시도를 많이 합니다. 비근한 예로 많은 유투버들이 개인 방송을 하면서 자신의 개성과 생각과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감성적이고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면에 이제는 절대적인 진리와 권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대적인 시대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거대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치열하게 관통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두 아들을 사사를 삼습니다. 사실 사사는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는 것이지 누구든 임명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무엘의 두 아들은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리사욕에 따라서 뇌물을 받고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잘 섬겼던 사무엘과 다르게 두 아들은 무슨 이유로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악한 자들이 된 것일까요? 성경에는 정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추정해보면, 사무엘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성소에서 자랐기에 부모에게 받은 자녀 교육이 없었던 것이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이스라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나라를 다스리다보니 자녀 양육에는 소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과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보면 그런 추측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의 어른이셨던 소천하신 어느 목사님의 아들도 ‘탈 회심’을 말할 정도로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자녀 교육은 부모의 신앙과 정성과 정서적인 친밀함 등이 적절하게 필요한 부분입니다. 부족한 부모 밑에서 아직까지 우리 딸이 잘 커주는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5) 사무엘은 자신과 두 아들을 거부하는 백성들에게 마음이 상해서 하소연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8:7~8)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했습니다. 출애굽 할 때에는 모세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할 때는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서 사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은 군사적인 힘이나 능력은 이방인들에 비해서 탁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체계적이며 조직적이거나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왕은 하나님입니다. 이방 나라들처럼 화려하거나 강력한 힘을 과시하거나 대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왕들과는 전혀 다른 왕입니다. 이방 왕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백성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거나 왕을 위한 존재로만 여겼습니다. 백성들은 궁핍과 억압을 당해도, 왕은 화려하고 탐욕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자비와 은혜와 인자와 진실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34:6)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15:3)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5)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히 여기지 않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악과 정욕으로 가득한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고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그의 왕이 되어주십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불완전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분의 다스림을 따를 때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합니다.